출가이전     성도하기까지      교화에서 열반
 
 
 
석가여래(釋迦如來)의 팔상성도(八相成道)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팔상성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염불을 할 때나 기타 갖가지 법회를 할 때 부처님의 팔상성도라고 하는 것을 낭송하기도 합니다.

팔상성도란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가지로 구분을 해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정리한 그림입니다.

지금부터 그 팔상성도의 이름과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팔상성도의 첫째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입니다.

『본생경(本生經)』에 의하면, 석존께서 인도 카필라라는 나라에 탄생하시기 전에 도솔천에 계셨는데 그 때의 이름이 호명 보살이셨습니다.
오랜 선정 끝에 호명 보살은 자기가 태어날 인연을 결정하여 중생으로 구도자로서 나타내 보이실 길에서 겪게될 모든 시련을 극복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도솔천의 신들을 위해 법문(法門)을 설한 후 도솔천을 떠납니다.
결혼 후 오랫동안 태기가 없던 정반왕과 마야 왕비는 어느 날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눈부시게 흰 코끼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왕비의 옆구리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자를 잉태하게 됩니다. 도솔래의상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Gotama Siddhartha) :
성은 고타마 '매우 좋은소' , 이름인 싯다르타는 '뜻을 성취한' '목적을 달성한' 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Sakyamuni) 즉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불렸습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
⊙ 바라문 - 사제자 (정수리로 탄생)
⊙ 크샤트리아 - 왕족,군인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
⊙ 바이샤 - 평민,상인 (자궁으로 탄생)
⊙ 수드라 - 천민,노예 (발에서 탄생)


 
 
그 다음 두번째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입니다.

비람강생상이란 마야부인이 그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해산을 하기 위해 가는 도중 룸비니 꽃동산에서 무우수(無憂樹) 가지의 꽃을 꺾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산기를 느껴 부처님을 낳았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라"라고 외치셨습니다.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에서 나 홀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헤매이니 내가 마땅히 모두를 편안케 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때에는 하늘과 땅이 즐거워하고, 모든 축생까지도 이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축하였습니다. 룸비니 동산에는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비추어 덮이고 사천왕(四天王)들은 공경히 태자를 모시려 하였고 태자께서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실 때 사색(四色) 연화(蓮花)가 솟아올라 태자의 발을 받들었으니 허공 중에서는 오색채운(五色彩雲)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로 아홉 용이 각각 머리를 들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고 하늘 사람들은 공중으로 비단옷을 내려 태자를 입혔다고 합니다. 비람강생상은 이와 같은 내용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시타선인의 예언은 왕자는 출가하면 부처님이 될것이요, 왕위를 계승하면 전륜성왕이 될 것인데, 자신이 늙어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싯다르타가 태어난지 7일만에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자랐습니다.

 
 
세 번째로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입니다.

싯다르타는 궁중의 안락과 사치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으로부터 격리되어 왔던 태자는 어느 날 성문 밖에서 늙어서 쇠약한 사람, 병들어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을 싣고 가는 상여의 행렬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태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궁중 생활의 허무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태자가 곧잘 사색에 빠지자 정반왕은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 등은 일체 태자의 눈에 띄지 않게 하였고, 궁중에 갖가지 향락을 베풀어 아름다운 시녀들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로 즐거운 생활만을 하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싯다르타는 성의 북문으로 나갔다가 세속을 떠난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온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수행 생활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것을 사문유관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태자는 고통받는 삶의 참모습(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모습)과 청정한 수행자에 대한 인식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열 아홉되던 해 콜리야족의 야쇼다라(Yasodhara) 와 결혼, 라훌라(Rahula)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훌라 : 장애라는 뜻.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출가에 또 하나의 장애가 생긴 것을 한탄함)

 
 
그 다음 네 번째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29세에 성을 넘어서 출가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화려한 성안의 생활을 뒤로하고 성을 넘어 출가를 하시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입니다.

유성출가상의 그림을 보면 태자가 종마 칸타카를 타고 시종 찬다카와 함께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출가를 결심한 태자는 성을 나서며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절벽 위에서 이 몸을 던져 큰 바위에 떨어질지언정, 모든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을지언정, 또한 스스로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아 죽을지언정, 만약 내가 마음에 다짐한 대로 중생들을 고통의 바다에서 해탈시키지 못한다면 결코 카필라 성에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출가의 장면을 출가의 의미로 상징화하여 성을 뛰어 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출가수행자가 된 싯다르타는 인도 남쪽의 신흥국가인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 스승을 찾아서
 - 박가바 (Bhagava):
  고행주의자.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함.
 - 알라라 칼라마 (Alara kalama)
   마음의 작용이 정지된 무소유처정 (無所有處定)의 상태에 이르는 수행을 행함.
 - 웃다카 라마풋다 (Udraka Ramaputra)
  사유(思惟)를 초월하고 순수한 사상만 남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 주장.


 
 
 
 


다섯 번째로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입니다.

이 설산수도상은 여러 곳에 다니면서 수도하는 그러한 과정, 또는 고행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마가다국의 우루벨라 마을에 있는 조용한 숲속으로 들어가 그 곳을 수행의 장소로 정한 싯다르타는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혹독한 고행만 하였습니다.
설산수도상은 그야말로 눈덮인 설산의 수하(樹下)에서 혹독한 수행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불본행집경』이나 『과거현재인과경』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없었고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고행을 포기 하였습니다.
쾌락이 그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지 못했듯이 끝없는 고통 역시 그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네란자라 강으로 가서 몸을 씻고 수자타라는 소녀가 주는 우유죽을 먹고 스바스티카가 바친 길상초(吉祥草)를 얻어 깔고는 결가부좌하여 앉았습니다.
"내 만일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홀로 맹세한 다음 싯다르타는 최후의 좌선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던 다섯 사람은 부처님을 타락하였다고 비난하며 떠났습니다.
설산수도상은 이와 같은 내용과 함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의 마지막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을 소재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다음 여섯 번째로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입니다.

이것은 보리수 아래서 마왕을 항복시킨 일이라 해서 수하항마상이라 합니다. 여러 가지 마음의 마귀와 근심 걱정이나 어떤 부정적인 생각, 온갖 잡념을 다 추방하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완전한 자유, 완전한 행복, 완전한 생명의 가치를 깨달은 것을 뜻합니다. 즉, 이것은 최종적인 해탈, 최종적인 성불을 뜻하는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불퇴전의 다짐을 하면서 목숨을 건 수행에 들어갔을 때, 『과거현재인과경』과 『방광대장엄경』의 내용과 같이 갑자기 마왕의 세계가 크게 흔들렸다고 합니다.
마왕 파피야스(papiyas)는 욕계에 속하는 천상 중에서 최고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으로 파순(波旬)이라고 음역됩니다.
이 마왕 파순이 사바세계를 훑어보니까 보리수 밑에서 사문이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힘이 대단히 강해서 마왕의 세계 전체가 흔들린 것입니다.
파순은 벌벌 떨면서 그의 대신들과 일천 명의 아들과 모든 권속을 불러 모아놓고서 말하였습니다. “세간에 있는 사문 고오타마가 지금 보리좌에 앉아 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여 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그의 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달려가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쳐부수어 반드시 그를 항복시켜라."
이에 마왕 파순은 요염하고 교태로운 아름다운 모든 천녀들 가운데 으뜸인 세 딸을 보내 유혹하기도 하고, 온갖 마군의 무리를 동원하여 모든 방법으로 사문 고오타마를 향해 공격하였고 아홉 가지 이변(異變)을 일으켜 성도(成道)를 방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벽화의 내용으로 주로 등장하는 장면은, 마왕이 세 딸을 보내 유혹하는 장면과 지신(地神)이 땅으로부터 솟아 증명하는 장면, 그리고 도판과 같이 태자가 마군의 무리에게 "앞에 있는 병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가 너에게 항복할 것이고 만약 움직이지 못하면 너희가 반역을 깨달아 나에게 항복할지니라." 하니 파순의 대중이 달려들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 등을 그려서 항마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업장이 소멸되자 오직 청정한 한마음으로 경계의 벽을 허물고 덮이었던 세계를 꿰뚫어 모든 것이 조화롭게 드러나는 생명의 참모습(諸法實相)을 여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밝은 새벽 별을 보는 순간 무상정등정각을 완성하고 큰 소리로 사자후하였습니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그래서 수하항마상을 항마성도상(降魔成道相)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바로 부처님이 명상에 잠기신 지 7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주위는 신비로운 고요에 싸이고 샛별이 나타났습니다.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는 문득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이치가 그 앞에 밝게 드러났다.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이룬 자, 즉 붓다(Buddha)가 된 것입니다. 35세 되던 해 섣달 초여드레, 샛별이 반짝이는 새벽녘이었습니다. 그 후 붓다는 보리수 근처의 여러 한적한 곳에서 삼칠일 동안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 마왕과의 대화
마왕 파순이 환속을 종용하면서 쳐들어오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1군(軍)은 애욕이며 2군은 불만이며 3군은 목마름과 굶주림이며 4군은 갈망이며 5군은 의지가 없는 것이며 6군은 불안과 공포이며 7군은 의구심이며 8군은 자신과 잘못을 감추려는 비루한 마음이다. 나는 너의 군사를 지혜로서 질그릇 깨듯이 분쇄할 것이다.'

마왕의 대화에는 여러 가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간의 권력을 미끼로 해서 종교적인 사명감을 단념하게 하는 유혹은 현세적인 가치관과 종교적인 가치관의 갈등인 것입니다. 실제로 마왕 파순의 여러 가지 도전은 비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그것은 내면에 도사린 번뇌와의 싸움 스스로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정신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마왕 파순의 정복은 구도자 내면에 도사린 번뇌의 정복이며 현실적인 욕망의 극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체험을 상징하며 또한 욕계의 지배자인 마왕이 지배하는 자기내면 세계에 자리하고 있던 욕망의 세계를 완전 극복함을 뜻합니다.

 

 
 
 
 


일곱 번째로는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입니다.

이는 녹야원에서 초전법륜(初轉法輪)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부다가야에서 성불하신 후에 녹야원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누구의 초청을 받고 가신 것도 아니고 또 누가 가라고 해서 가신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깨달은 이 진리, 자신이 성취하신 이 행복을 나 혼자 수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누구에게 전해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누가 이 법을 물려받을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찾기는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제일 먼저 나의 이 법을 전해 줄 것인가 이것을 생각 생각 해 본 끝에 그래도 나의 최초의 설법을 들을 사람은 한 때 나와 같이 수도를 했던 그 다섯 비구들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이 다섯 비구들이 있는 녹야원으로 가셔서 그 최초의 설법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설한 것은 중도, 사성제, 팔정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가운데 교진여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니 최초의 비구였습니다.
이 다섯 비구들은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서 아라한, 즉, 해탈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뒤 부처님께서는 야사를 비롯한 60명의 젊은이들에게 법을 설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각 지방으로 가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할 것을 이렇게 권유하였습니다.

"비구들아,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아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진리를 설하여라. " -붓다의 전도 선언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그들과 제자 1,000명, 사리불과 목건련의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성도하신지 몇 년후에 고향인 카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아난과 라훌라, 아니룻다, 우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습니다.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행복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설법하시는 과정을 녹원전법상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7·7일 동안 삼매의 힘으로 계속 계시면서 해탈락에 머무시다 제석천과 대범천왕의 지극하고도 간절한 권청을 받고 권청하였던 여러 범천과 세상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방광대장엄경』에 보면, "내 이제 그대들의 원을 받아 마땅히 법비를 내려 감로의 문을 열리라. 청정한 믿음으로 귀를 기울이라. 기꺼이 법을 설하리라." 녹원전법상에서는 설법하시는 부처님과 법을 듣는 다섯 수행자, 그리고 설법 장소가 녹야원임을 상징하는 사슴이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그려집니다.

최초의 재가불가 - 야사의 부모

죽림정사 (竹林精舍) - 왕사성의 국왕인 빔비사라왕이 우기(雨期)동안 머무시며 가르침을 펴실 수 있도록 기증한 최초의 정사

기원정사 (祇園精舍)
- 코살라국의 수잣타 장자가 부처님께 바친 정사.

 
 
여덟번째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입니다.

쌍림열반상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인도의 구시라성에서 열반에 드신 것을 의미합니다. 쿠시나가라라고 보통 말합니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동안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하셨습니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 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너희들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 고 이르셨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부처님께서 도달하셔서 조용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인도에서는 성자의 죽음에는 화장을 하게 됩니다. 인도에서는 장사지내는 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에다 그냥 띄우는 수장(水葬)이 있고, 수풀에다 그냥 버리는 임장(林葬)이있고, 매장(埋葬)이라고 해서 흙을 파서 묻는 토장(土葬)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사람의 장례로 되어 있습니다.
아주 덕이 높고 지혜가 높은 성자들에게 있어서는 꼭 불로 태워서 깨끗이 하는 화장(火葬)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장례도 화장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몸에서는 많은 사리(舍利)가 나왔습니다.
이리하여 이 사리를 모시기 위해 탑(塔)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사리(五色舍利)는 세계 곳곳에 모셔졌습니다. 불교의 나라는 의례 탑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불교의 나라는 바로 탑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돌아가시면서 또 하나의 불가사의한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유해는 다비장으로 운구되어 화장용 장작에 불을 붙였으나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구시라성에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가섭존자는 일주일 후에야 부처님 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이미 관을 겹겹히 둘러서 부처님의 몸은 깊은 관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에 늦게 도착한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아주 안타깝게 여기고 부처님의 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바로 부처님은 관 안에서 두 발을 밖으로 확연히 내보이셨습니다. 그러자 장작에는 스스로 불이 붙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곽시쌍부(槨示雙趺)입니다. 그러면 관 안에서 두발을 내 보이신 참뜻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는 죽어가는 모습이 있지만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참다운 생명이 있고 변하지 아니하는 참다운 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통해서 그와 같은 진리의 실상을 보이셨습니다.

열반의 원어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nirvana)이다. 중국의 번역자들이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어 열반이라 한 것이다.
또 이를 뜻으로 번역하여 멸도(滅度), 적멸(寂滅)이라 하고, 줄여서 멸(滅)이라고 하였으나 아무래도 본디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열반이라는 말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니르바나(nirvana)는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한다.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痴)이 소멸된 심리 상태이다.

 
이리하여 불교에서는 팔상(八相)으로서 부처님의 일생을 이해합니다.

이것을 간략히 보면 호명보살로 하늘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동시에 천인이고 또 싯다르타 태자로 인간의 고뇌를 겪었기 때문에 인간이며 또, 35세에 성불하셨기 때문에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은 천인과 인간과 부처님으로서 일생에 세가지 의미를 한 몸에 보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팔상성도는 단지 여덟 가지의 그림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일생을 사시면서 나타낸 많은 일들을 여덟 장의 그림에 나타내신 것이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부분 부분적으로 그려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여러 개의 작은 그림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히 그림을 뜯어보면서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해 내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공부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그것을 요약해서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림을 통하여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자각해서 해태심을 내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고 또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팔상도가 언제부터 그려졌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조선 후기에 그려진 팔상도가 웬만한 전통사찰이면 모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 전부터 예배 공양을 목적으로, 또는 교화의 목적으로 팔상도가 성히 그려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